오늘부터 국회의원 사전투표를 한다

나는 사전투표 제도를 민주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투표 자체도 서열화 차별화 불평등을 야기하는 민주주의를 빙자한 합법적인 계급화 사회를 만드는 도구로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전투표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투표자의 공정한 조건이 다를 수 있기에 그리고 사전투표의 내용이 아무리 공개되지 않는다 해도  사람과 사회적 속성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수 있고  시간적 차이가 결과의 차이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전투표를 통한 모집단의 수를 늘리는 것이 최고 바람직한 것이라면 받아 들여야 하겠지만 과연 그럴까?

 

투표의 결과는 무엇인가 대표자를 뽑는 것 그들이 법을 만들고 행동과 사상 그리고 벌칙과 포상의 수준을 매기고 차별화 하고 합리화 하는 것 이것들이다

대표자와 비대표자의 차별, 법에 의한 인간의 차별, 어쩔 수  없나? 사회의 구성을 위해, 안전과 질서를 위해 감내해야 할 것들 그것을 위해 투표한다

투표는 내 의견이 아니다 상황의 테두리가 주어진 결과 내에 들어가는 사회에서 제시하는 테두리 안의 제한된 의견이다.

 

그것이 진짜 내 의견인가?

단지 싫고 좋음 관계 있음 없음을 구분하는 역할 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투표에 의한 대표자는 대표할 뿐이지 내 의견을 내서는 그것이 우리의 의견이라고 단정해서는 안된다

좋고 나쁨의 구분 관계 있음 없음의 구분으로 그 집단 과 다른 집단을 차별화 하고 계층화 해서는 안된다 

또한 소수의 의견을 묵살해서도 안된다

정의로와야 한다.

낮은 곳, 소수 자를 옹호하고 가진자를 적대하지 않고 베품을 장려하고 희생을 솔선하고 평등과 자유를 지키는 파수꾼 역할이 필요하다

 

어떤 대표자가 그럴 수 있을까?

사심이 없어야 하고 평등과 자유에 입각한 정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표자의 요건으로 평등과 자유를 지키는 정의로운 활동의 공약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를 실천할 수 있는 자유 평등 정의의 확고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정의로운 활동을 바르게 수행하고 지탱해 줄 힘이기 때문이다.

현재에 보여지는 공약은 그 다음의 것들이다

 

대표자는 보통의 사람이어야한다

특별한 존재가 됨은 스스로가 차별화 계급화 됨을 의미한다

그러한 대표자는 그 계급을 대변하게 된다

보통의 사람이란 막연한 존재는 없다

그를 규정하는 근거도 없고 본질적으로 다름을 추구하는 세상에서는 정의할 수 없다 

 

나는 보통의 대표자를 즉 선거에 의해 당선된 모든 대표자를 월급 300만원 받는 우리들과 다를 바 없는 존재로 했으면 좋겠다

다른 직업을 결코 겸임해서도 안되고, 지원되는 기타 사항은 차량 혹은 필요한 교통비로 대통령에서 지방 의회 의원까지 이것만 차이 두고 근무조건은 사무실등 별도의 규정 즉 필요사항에 따라 제공하면 된다.

업무 활동 성격상의 필요사항만 달라질 뿐이다 당선자의 다른 직원 예를들어 비서,수행원등도 그보다 월급이 많을 수도 있다

 

이것이 시사하는 것은

대표자는 아무도 내려 보지 않고 올려 보지도 않으며

자유와 평등에 입각하여 정의롭게 행동할 수 있는 여건

즉 누구에게도 간섭 받지 않는 행동과 결정으로

우리에게 자유 평등 복지 직업 신앙 행복된 삶으로 가까이 갈 수 있게 하는 데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단순하지 않다 그래서 정답은 없다.

그래도 가능한 것은 한번 시도해 봐야 하지 않을까. 

평등과 자유, 세상에 있어서 어떤 가치도 자유와 평등을 넘어 서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공산주의,사회주의는 평등의 가치를 더욱 중요시 하고, 자본주의는 자유의 가치를 더욱 중요시 함으로써 서로 대립하고 보완 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확고히 해 나가고 있다
 

평등을 너무 주장하면 자유의지의 발현에 저해될 수 있고,  자유를 너무 주장하면 사람들은 차별화 되기 쉬워진다

 
그래서 소위 자유 민주주의는 부의 차별화와 사람들을 계층화 시키고 있으며, 당연스럽게 계급을 무수히 만들어 내고 있으며 이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익숙하게 몸에 베어 들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롭게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창출된 부가가치를 창출한 자가 누릴 수 있게 하여 누릴 수 있는 만큼 타인과 자신을 차별화 하고 그 차별화는 보이지 않는 계급을 형성한다


그 계급은 부도 될 수도 있고 직업도 될 수도 있고 학력도 경력도 될 수 있다

즉, 자유 의지에 의해 차별화 된 모든 것은 계급화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유의지에 의한 차별화는 극복할 수 없는 본태적인 것인가? 
 

평등은 자유로운 행동과 사상 즉 서로를 차별화 하고 다르게 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활동을 저해한다


이것은 남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며 자신의 부가가치 창출의 의미를 퇴색시키며 부와 빈곤의 차이에 대한 인식에 무감각해 져서 자기 성취에 대한 의미를 잃어 가는 허무주의와 평등한 행복 즉, 배가 고파도 평등하다는 행복에 빠질 수 있다

그러면 평등은 인간의 보편적이면서 개별적 특수한 행복을 이루는 데 저해되는 인간의  목적인가?
평등은 인간의 보편적인 행복과 개인의 특수한 행복을 증진하는 데 반작용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본질인가?
 

자유와 평등 이 둘은 대립적인 것이고 결코 보완적인 것은 아니다

자유를 잃는 만큼 평등해 질 수 있고 평등을 잃는 만큼 자유로와 질 수 있다

이 둘이 대립적이 아니라면 평등해 질 때 더 자유로와 져야 하고 자유로와 질 때 더 평등해 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평등해 지면 질 수록 자유는 제한되고 자유로와 질 수록  불평등해 진다

 

그러면 평등을 제한하고 자유를 제한하면 인간사회를 자유롭고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합의되고 인정하는 그 자유와 평등의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까?
내 생각은 절대로 안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개별적 자아를 갖고 있다

그리고 각 개인의 환경과 여건에 따라 자유와 평등의 인식이 다르다

이것은 자유와 평등의 수준이 일정한 것이 아닌 상황,각 개인 또 시간에 따라 항상 변화하고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합의되고 인정되는 자유와 평등의 수준을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일시적인 자유와 평등의 제한 유보등은 두 목적 가치로 마치 조화롭게  나아가는 것으로 빙자한 속임수적인 방법일 뿐이며, 본질적인 방법일 수는 없다 마치 안 보면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실제와는 다른 눈가림 일 뿐이다.
 

평등은 기독교에서의 하나님 앞에서의 평등,절대적인 평등, 불교에서의 다름이 없는 무상의 만인의 절대평등, 이는 가치라기 보다는 진리다.

진리는 인간이 어떠한 방법을 쓰든 변화시키려고 하든 불변한다

즉, 평등을 제한해도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평등하다.

따라서 평등은 인간이 깨달아야 할, 더 가깝게 가야 할 과제이지 인간이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자유는 인간 개인의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들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을 더 인간답게 할 수도 있고 인간을 차별하는 인간으로 만들 수도 있다.

이 모든것은 보편적인 의지의 수준이 다 다르고 개별적인 의지가 극과 극으로 다를 수 있고 그 실행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모두 다르기 때문에 자유의지의 방향과 크기는 가늠하기 어려우며 그를 축소 자제 삭제하는 것을  타인의 의지로  변경 변화시키는 것은 어렵다

 

즉, 자유의지의 존중은 극단적으로 일정부분은 타인의 자유의지와 인간의 기본적인 평등권을 헤칠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자유의지는 자유의지와 대립되고 평등권과도 대립되는 인간 존중과 비존중을 동시에 갖고 있는 권리이다.

불가침의 권리로써 타인의 자유를 헤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이론적인 허상이다 내 자유를 존중하는 만큼 타인의 자유를 존중할 수는 없다 
 
이러한 대립적인 두 가치는  사회주의와 수정 자본주의 복지 사회로써 추구하는 바 대로 자유와 평등을 구현할 수 없다.   본질적으로 자유는 불평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우리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그것은 존중과 희생을 통한 소통으로 부분적으로 상호 대립을 해소하고 사회적 인정과 합의를 통해 만들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재의 상황으로는 불가하다.

 

자유에 대한 생각 평등에 대한 생각이 변화 되어야만 가능하다

 

존중은 나만큼 타인을 인정하고 우대하는 마음이다.

희생은 나의 자유의지를 타인을 존중함으로써 스스로 자유의지를 줄이거나 삭제하거나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소통이다

즉 존중과 희생없이는 진실된 소통이 어렵고 형식적이 되기 쉽다.

아무리 소통한다고 해도 그 기저가 자신의 자유의지의 확고함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그 소통의 장은 스스로의 외침과 주장 밖에 되질 않을 것이다

 

이러한 소통을 통한 자유의지의 실현과 평등의 구현은 가능한가? 유감스럽게도 불가하다. 다만 그쪽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중요 가치 자유 평등 그리고 존중과 희생은 기본적인 세계관 인간관에 대한 교육으로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은 30년 걸릴 것이다 지금부터 해야한다

그래야 자유의지를 실현해 나감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계층 없고 차별없는 부의 세계로 가까와 질 수 있을 것이다

100%는 불가하다. 분배의 실천도 자유의지를 훼손하지 않고 자아실현을 가능케하고 저마다 노력하고 성취하고 일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으며 모두의 권리가 평등하게 유지할 수 있는 교육체계 분배체계 자유의지 증진 체계를 지금부터 만들어야 한다

서로 대립되는 것을 대립되지 않게 만드는 것은 다시 말하지만 존중과 희생을 통한 소통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은 교육이고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것은 그것을 기반으로 한 시스템이고 그 시스템은 존중과 희생을 통한 소통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또한 결과는 자유의지를 실행하는 욕구를 진작해야 하며 평등한 삶도 존중과 희생의 맥락에서 공감 되어야 한다  

단, 희생은 결코 요구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어야 한다

나를 존중하는 만큼 남을 존중하고 나의 자유의지의 대가를 희생할 수 있고 자랑스러워 할 수 있다면 남의 그러한 희생을 칭송할 수 있다면 보다 평등하고 자유의지의 실현을 진작할 수 있는 서로 평등하게 인식하고 칭송하는 자유와 평등의 세계로 가깝게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교육의 힘만이 가능케 할 것이다

 

자유,평등,존중,희생의 교육 30년 그것이 답이다 

'하루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계절의 시샘  (0) 2024.04.04
  (0) 2024.04.03
봄바람  (1) 2024.03.26
  (0) 2024.03.26
춘분  (0) 2024.03.21

+ Recent posts